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자전거 친화적인 국가로 손꼽히며, 도시 어디를 가든 자전거 전용 도로와 편의시설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인프라는 단순한 교통 수단의 편의를 넘어서, 도시 환경과 지속 가능성, 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네덜란드가 어떻게 자전거 중심 국가로 발전했는지를 역사적 맥락과 정책적 배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20세기 중반 이전: 자전거의 일상화와 교통의 시작
네덜란드의 자전거 문화는 20세기 초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도시로 이동했으며, 저렴하고 효율적인 교통수단으로 자전거가 자연스럽게 확산되었습니다. 1930년대까지 자전거는 네덜란드 국민 대다수의 주요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자전거 이용률이 높았습니다. 당시에는 별도의 자전거 전용 도로가 없었지만, 도로 설계 시 자전거를 고려하는 문화가 일찍부터 형성되었고,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자전거 이용률은 점차 감소하게 됩니다. 1950~60년대에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자전거 도로는 점차 사라지고 자동차 우선의 도로 구조가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도시 외곽의 교외화가 진행되며, 자전거는 점점 교통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자전거 이용률이 떨어지고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는 이후 자전거 중심의 정책 도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자전거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위기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선택이었습니다.
1970년대 전환점: 시민운동과 정책적 반응
1970년대는 네덜란드 자전거 정책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시기입니다. 1973년 석유파동으로 인해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고유가와 교통혼잡, 대기오염 문제는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자각을 일으켰습니다. 같은 시기, 아동 교통사고 사망률 증가가 사회문제로 부각되었고, 이에 대한 시민운동인 “Stop de Kindermoord(아이들 죽음을 멈춰라)”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도시에서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요구하며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졌고, 정부는 자전거 인프라 구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정부는 1974년부터 자전거 도로 구축을 위한 예산을 대폭 증액했고, 도시마다 자전거 전용도로(Bike lane), 자전거 신호등, 보관소 등의 인프라가 단계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흐로닝언 등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까지도 계획적인 자전거 정책을 도입하였고, 자전거 이용률은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게 됩니다. 이 시기의 정책적 특징은 단순한 도로 확장이 아닌, 교통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었습니다. 도보자, 자전거 이용자, 대중교통 이용자를 우선으로 고려한 도시 설계가 적용되었고, 이는 오늘날 네덜란드형 지속가능 도시 모델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현대 자전거 인프라 정책과 글로벌 영향력
오늘날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자전거 인프라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교통수단 중 약 27%가 자전거로 이루어집니다.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자전거 우선 도로를 설계하고, 자전거 고속도로(Fietssnelwegen), 자전거 전용 다리 및 터널까지 완비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자전거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환경, 건강, 경제’를 통합하는 교통 해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탄소중립(Net Zero) 목표 실현을 위한 전략의 핵심 도구로 자전거 정책을 활용하고 있으며, 자전거 출퇴근 장려, 자전거 보험 제도, 기업의 자전거 인센티브 제도 등이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디지털 자전거 지도, 실시간 도로 혼잡도 알림, 공공 자전거 공유 플랫폼(Fietsdeelsystemen) 등 스마트 교통 시스템과 연계된 자전거 정책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자전거 이용자의 편의성과 안전을 동시에 고려하는 세심한 정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벤치마킹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는 UN과 EU 등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개발도상국에도 자전거 인프라 개발 모델을 수출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전거 정책이 단순한 교통이 아닌 지속가능 발전 전략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네덜란드의 자전거 인프라는 오랜 역사와 시민사회의 요구, 환경적 필요에 의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왔습니다. 이 모델은 교통정책, 환경정책, 건강정책이 통합된 지속가능한 도시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도시들도 네덜란드의 정책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지속가능한 미래 교통을 위한 대안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